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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um

노인



노인

 

                                                                                                             황인숙

 

 

                                  75세 이후의 삶이란 인간이 절멸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메리 파이퍼-

 

 

 

나는 감정의 서민


웬만한 감정은 내게 사치다


연애는 가장 호사스런 사치


처량함과 외로움, 두려움과 적개심은 싸구려이니


실컷 취할 수 있다.


 

나는 행위의 서민


뛰는 것,춤추는 것,쌈박질도 않는다


섹스도 않는다


욕설과 입맞춤도 입 안에서 우물거릴 뿐


 

나는 잠의 서민


나는 모든 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


화장수 병 뚜겅 닫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잠에 겨운 소근거림


소리가 그친 뒤 보청기를 빼면


까치가 깍깍 우짖는다


 

나는 기억의 서민


나는 욕망의 서민


나는 생의 서민


 

나는 이미 흔적일 뿐


내가 나의 흔적인데


나는 흔적의 서민


흔적 없이 살아가다가


흔적 없이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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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내 기억 속에서 주(主)가 아닌 배경으로만 인식되었던 사람들.


그들의 감정이나 고민, 애환에 대해 '공감'한 적이 몇번이나 있었을까.


사회 속에 뿌리깊게 녹아있는 


Ageism 속에서 우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노년층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실버산업이다 뭐다해서


노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이미 인간의 숨소리조차 물화(物化)된 시대 속에서


그 더러운 금빛 홍수 속에 더욱 철저하게 배제되는 인간적인 시선.


마치 창 밖 풍경처럼 우리의 초점에서 벗어난 채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노인들을 


감성적 객체로 전락시킨 책임은 


우리 젊은이에게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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