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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um

북극의 눈물



명품다큐라 했다.

 

과연 온난화에 따른 가장 극명한 변화를 겪고 있는 북극이라는,

 

환경 다큐의 소재로서는 다소 진부한 주제를

 

어떻게 다뤘길래 신문에 기사까지 나면서

 

명품이니 뭐니 하나 싶어서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1,2편 둘 다 봤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실망이었다.

 

이게 어찌 명품다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제작의도는 온난화로 인해 변화된 북극 기후로

 

동물들과 인간들의 삶이 위협받고있고 이를 조망함으로써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이리라.

 

글쎄...

 

얼음이 녹는시기가 빨라져 북극곰의 사냥기간이 짧아져서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된 것과.

 

역시나 얼음이 빨리 녹아서 이누이트의 사냥이 위험해지고

 

뭐 이런저런...

 

또 빙붕이 붕괴되는 영상의 반복...

 

그렇다.

 

그간 북극, 남극 관련 다큐를 좀 봤다 싶은 사람들은 반복되는

 

영상과 스토리에 분명 식상함을 느꼈으리라.

 

새로운 것이 없었다.

 

영상이든, 스토리든.

 

물론 몇년 전 세렝게티 다큐처럼 Made in KOREA라는 점에서는

 

희소성있는 다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뿐이고, 북극의 눈물은

 

오히려 단순 기록과 관찰이 목적인

 

세렝게티보다 더 떨어지지

 

않나 싶다.

 

1,2편 내내 현상적인 측면, 즉 얼음이 빨리 녹고, 그에따라 뭐가

 

변화되고 이런 것들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기존 환경다큐들과

 

차별화되는 경각심을 제공하지 못했다.

 

빙붕이 사라지고, 북극곰이 굶고, 이누이트가 죽고...

 

이러한 것들에서 지금 나와 내 이웃들로부터

 

'내일부터는 스프레이 사용을 줄여야 겠다' 라는

 

각성을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한마디로 북극에 변화를 일으킨 주체들의 모습은 배제한 체

 

변화로 인해 피해받는 객체들의 모습만을 부각시켜버린

 

단절된 다큐다.

 

이는 단지 볼거리 위주인 시간때우기 SF영화와 다를 바 없다.

 

물론 아직 전편이 다 방송되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미 전반부(1,2편)에 방송된 수많은 스토리와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 만큼의 퀄리티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구성과 편집에 아쉬움이 더 남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확실한 임팩트가 없었고, 화면 가득 보여진 유빙들처럼

 

1시간 남짓한 내내 이야기는 둥둥 떠다녔다.

 

안성기의 나레이션도 영상에 녹아들기 보다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PD는 안성기의 금속성 음성과 하얀 북극의 차가움이 서로 어울릴

 

것이라 했다.

 

그러나 차가운 비극으로 가득한 영상을 뒤덮을만큼의

 

따뜻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환경파괴의 주체인

 

우리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안성기의 냉정한 목소리만큼이나 북극의 비극을

 

더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북극의 눈물과 같은 환경다큐는

 

세렝게티 또는 동물의 왕국과 같은

 

생태다큐 또는 단순 역사다큐와는 달라야 한다.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짐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촉구하는

 

강한 목적의식과 책임을 가졌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그 수단으로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방법을 택했고, 따라서 북극곰와 이누이트의 삶을 주된

 

타켓으로 택했다.

 

일단 시청자들의 표면적인 반응을 살펴보면

 

어느정도 작전은 성공한 듯 싶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감성적 울림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는것이

 

오늘날 환경다큐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이다.

 

다큐는 시청자의 그 울림을 환경파괴의 주체로서의 책임감으로

 

연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극의 가슴아픈 모습 외에도

 

아주 냉정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주체의 삶 내부를 파헤치고,

 

비판해야한다. 우리의 무책임한 행동에서

 

북극의 아픔을 연상토록 해야한다.

 

과연 북극의 눈물에 이러한 연결고리가 존재하는가.

 

주체와의 연결고리가 형성되지 못하면 북극의 눈물 역시

 

시청자를 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차가운 시선의 방관자로 만들 뿐이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북극의 눈물은 결코 한국에서의 희소가치 외에는

 

다른 별스럽지 않은 다큐들과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

 

오히려 시청율이 얼마나 나왔네, 명품이네 하며 떠들어대는 언론과

 

스스로 인삿말 비슷한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내걸며

 

호들갑을 떨며 자축하는 제작진을 보면서.

 

우리사회가 정말 명품다큐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씁쓸한 입맛을 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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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전역 후 갓 복학해서 쓴 초등학생 수준의 감상문이지만

블로그가 말라죽어가고 있어 싸이에 있는 글을 좀 퍼다 나른다.

위 글은 표현이 좀 거칠기도 하고..

북극의 눈물에 대한 대다수 사람들의 평가와는 상반되는 부분이 있다.

당시 '불편한 진실'을 본 지 얼마되지 않았고

환경다큐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정립한 이후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북극의 눈물이 극장에서 상영이 되고, 그 후속작(?)으로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까지

MBC의 환경다큐는 이어지고 있다.

남극까지 간다는데...

아마존의 눈물과 아프리카의 눈물을 보는 나의 시선도 북극의 눈물을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C의 홍보와 시청자들의 반응.

방송 후 이슈화'되어지는' 주제들까지.

예능프로에까지 나가서

제작진의 노고와 원주민들의 문화에 대해 떠들어 대는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어려운 환경에서 긴 시간동안 좋은 영상을 담아 온 제작진의 노고는 격려받아 마땅하고,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원주민들의 문화와 삶 또한 가치있는 이야깃거리겠지만

모든 논의의 초점과 수준이 거기서 그친다면 굳이 제목에 눈물이라는 단어가 들어 갈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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